농촌으로 이사 와서 백일을 지내며(2011.07.12)
농촌 마을로 이사를 온 지 백일이 되었다. 우리 마을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이 반원처럼 마을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고, 마을 앞에는 동네 사람들 먹고 살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만큼의 논이 있는, 50가구 남짓이 사는 작지도 크지도 않는 마을이다. 농사의 주력은 여전히 감농사지만 지금은 묵혀버리는 과수원이 생겨나고 있는, 노인들이 마을의 주인인 그런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한때 이 마을은 120호가 넘었다고 한다. 시골마을치고는 아주 큰 동네였을 것이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어렵다보니, 한 집 두 집 도회지로 나가고 지금은 집들도 듬성듬성 남아 있다. 무너진 빈 집 터는 텃밭으로 이용해왔지만 그나마도 지금은 비워둔 곳이 많다.
평소 우리 마을은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초등학생도 없다. 아니 책가방 메고 아침에 나가는 학생을 나는 아직 이 동네에서 보지를 못했다. 아이들 소리는 주말이나 휴일이 되어야 다니러 오는 젊은 가족들이 있어 들을 수가 있는 것이 지금의 시골 마을이다.
농촌 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내가 만든 규칙이 하나 있다. 주말이나 휴일 아침에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기계는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사 오고 한동안 땔나무를 장만하기 위해 기계톱을 많이 썼고, 지금은 밭과 집 주변의 잡초 때문에 풀베는 기계를 많이 쓴다. 평일 아침에는 일찍부터 일터로 나가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휴일에는 다니러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되도록 이런 기계는 쓰지 않는 것이 내가 터득한 공동체의 규칙이다. 그래서 나는 금요일을 집안일 하는 날로 정했다. 주말에는 나를 찾는 손님도 적지 않고, 이 곳 생활에서 이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배려이기도 하다.
어제는 마을 어른 몇 분과 강둑에서 낙동강의 불어난 물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보일러 기름 값 이야기를 내가 먼저 꺼냈다. 도시에서는 난방과 취사를 다해도 가스비가 월 10만~15만 원이면 충분했는데, 여기서는 4월 한 달에만도 기름 값이 20만 원이 넘게 들었다고 말을 했다. 이대로면 겨울에는 기름값이 한 달에 50만 원도 더 들겠다는 걱정도 했다. 내 말을 되받아 하시는 그분들 대답이 더 놀라왔다.
시골에서 기름보일러 따뜻하게 불 때며 사는 사람은 없다는 말씀이셨다. 초저녁에 잠깐 틀었다가 끄고, 잘 때는 전기장판 한 장에 의지해 이불 뒤집어쓰고 잔다고 하셨다. 제대로 보일러를 트는 때는 설명절 자식들이 올 때 뿐이고, 아이들 가고 나면 바로 보일러 끈다고 하셨다. 명절 지나고 줄어든 기름 때문에 부부싸움을 할 때도 많다고 하시며 웃으셨다.
그러나 농촌 생활이 주는 좋은 점도 있다. 새소리와 더불어 아침을 맞는 것은 이런 시골 생활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한다. 아침잠이 많은 나지만 이곳에 오고부터는 새벽 다섯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멀리서 우는 뻐꾸기 소리, 조금 가까이서는 목이 조금 쉰 듯한 꿩 우는 소리, 가까이 대밭과 팽나무 가지에서 나는 이름도 모를 수많은 새들의 합창 소리가, 이들에게 미안해서 더 드러누워 있을 수가 없도록 만든다.
그러나 삶은 현실이다. 왜 젊은 사람은 도회지로 나가고 농촌에는 나이든 노인들만 사는가 하는 생각을 요즘은 자주 하게 된다. 문화적인 혜택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먹고 사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동네에 구멍가게 하나도 없어 라면 하나를 사려고 해도 대처로 나가야 하고, 학교를 보내는 문제만 해도 부모가 직접 학교까지 태워다주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 그 흔한 학원조차도 없는 이곳 시골 생활에서 어떻게 젊은 사람들이 가끔씩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 수 있겠는가?
푹푹 찌는 한여름의 초입에 벌써 겨울 난방비 걱정을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이사 온 지 석 달 만에 가장 심각한 시골 생활의 어려움을 하나 꼽으라면 이것을 말하고 싶을 정도로 난방비는 심각하다. 스무 평도 안되는 작은 농촌 주택에서 살면서 말이다.
정치를 지켜봤고 선거를 치러봐서 잘 안다. 농산어촌 시골 마을 노인들의 표는 많지가 않아 힘이 없을 것 같고, 시골에 부모 친지를 둔 도회지의 자식들까지 다 하면 가능할 것 같기는 하다.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다. 농산어촌 시골 마을에 난방과 농사용 기름 값 내려주겠다는 후보를 찾아야겠다. 도시 난방비와 비교해서 이런 곳에 사람이 돌아와서 살도록 하자면 1리터당 1300원이 넘는 난방용 기름 값이 500원까지 내려와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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