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과 사고의 예측 가능성(2011.03.17)
어릴 때 우리 집은 큰길가에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산에서 목포까지 연결되는 2번 국도가 바로 우리 집 앞을 지났다. 우리 집에서 차표를 팔았기 때문에 집 앞이 정류장이었고, 차가 지나다니며 내는 비포장도로의 먼지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했다. 우리 집은 가게를 운영했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 지역에서 가장 목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분명했다. 5일장이 서는 국도변에 있었고, 우리 집이 버스 정류장을 운영했으니 항상 집 앞에는 차와 사람들로 붐볐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차 조심이었다. 가게문 1m 앞이 도로였으니 교통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공간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장사라면 최적지였지만 아이를 키우는 곳으로서는 최악의 공간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생업에 유리한 공간을 선택했지만 나의 부모님은 차 조심에 대한 끊임없는 강조를 통해 자식들의 안전도 확보해낼 수 있었다. 다행히 자라면서 우리는 한 번도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8남매 모두 작은 사고도 한 번 없이 그 장소에서 장성할 수 있었으니 참 고마워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며칠 전, 이번에 대학원을 졸업한 딸아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길을 건널 때, 실수로 엎어질 것도 생각해서 다시 일어나서 건너도 될 만큼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길을 건너야 한다. 아빠가 손을 잡고 길을 건널 때마다 이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들었다니 거짓말을 아닐 것이다. 그 덕에 두 아이도 크게 다치지 않고 자랄 수 있었고, 안전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교육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20년 전 초보 운전 때, 나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길이가 긴 트럭이 2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는 그 사이에 먼저 가려고 내가 3차로를 비집고 들어갔다가 그 트럭의 오른쪽 뒷바퀴에 내 차가 크게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다. 법적으로는 3차로에서 하는 우회전이 우선이지만, 만약 경력이 있는 운전자였다면 그 상황에서 절대로 나처럼 3차로에 끼어드는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길이가 긴 차는 회전 반경이 커서 2, 3차로를 같이 물고 우회전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그 때 몰랐던 것이다.
교통사고는 내가 아무리 잘 해도 상대가 잘못해서 날 수 있다. 반대로 교통 사고라는 것은 상대가 웬만큼 실수를 해도 내가 그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만 잘 하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방어 운전이라 한다. 나는 그 때 방어 운전의 개념을 몰랐다.
지금 일본은 난리가 났다. 지진과 해일로 해서 수 만 명의 인명 피해와 수십 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고의 규모에 비해 일본인들의 위기 대처 능력과 높은 시민 의식으로 그 수습의 과정도 모범적일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오늘 방송에서도 이런 사고에서 그 흔한 약탈과 방화, 새치기 등의 무질서가 전혀 없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질서 의식과 준법정신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있다. 방사능 유출이다. 피해 지역의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4기가 차례로 폭발을 했다. 며칠을 두고 연쇄적으로 폭발을 해도 손을 쓰지 못했다. 하나가 폭발을 했을 때, 나머지 원자로에 대해 손을 쓰지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우리는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지금의 폭발은 다행히 연료봉이 들어있는 격납고의 바깥에서 생긴 폭발이라지만, 지금 격납고 안이라고 해서 안전이 보장된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예측하고 대응하고 그래서 안전이 확보될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 원자력 사고는 그 범주를 벗어난다는 것에, 그리고 방사능 유출은 그 결과가 극도로 심각하게 드러난다는 것에 우리는 방점을 찍어야 한다.
안전에 있어서 일본은 세계 제일의 나라다. 모든 건축물에서 내진 설계가 기본이고, 그들은 예측 가능한 모든 문제를 다 고려해서 원자력 발전소를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가 났고, 이번 사고는 그들의 예측 가능성의 범주마저도 벗어나버리고 말았다.
교통사고는 끊임없는 교육과 예방 지도를 통해서 없애거나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운전자는 이른바 방어 운전으로 교통사고의 가능성을 크게 줄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방어의 개념을 뛰어넘는,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서의 사고가 있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원자력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라면 우리는 모두가 한 무덤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원자력 사고의 불가측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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