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5. 3. 23:10

내가 가르쳐 본 과목

나는 수학 영어 말고는 안 가르쳐 본 과목이 없는 것 같다. 개교 당시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석사 학위 이상을 지니고 있었지만, 딱 두 사람, 국어과 김혜란 선생님과 내가 대학을 갓 졸업한 학사였다. 김혜란 선생님은 국어과라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나는 사회 과목만으로는 규정된 시간을 채울 수 없었다. 그러니 몇몇 과목, 시간 강사를 쓸 수 있는 교과를 빼고는 다 내 차지였다. 


1985년 3월, 그러니까 개교 2년째다. 신입생이 입학을 했는데 교가를 가르칠 선생님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옥상으로 신입생 전부를 데리고 올라가서 교가를 가르쳤다. 그 해 처음 오신 선생님들은 아마 내가 음악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곧 드러나고 말았지만. 


1985년 2학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금요일 하루는 내가 맡은 수업이 다섯 시간이었는데 매 시간 다른 책을 가지고 들어갔던 때가 있었다. 사회1, 사회2, 윤리, 공업, 한문 다섯 과목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다. 교재 연구가 제대로 안돼서 진땀을 흘리며 수업을 한 날도 있었고, 다른 교재를 들고 들어간 날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만물 박사였던지, 아니면 대충 때웠던지 둘 중에 하나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한테 미안할 뿐이다. 


지금도 나는 가끔 내가 들어갈 교실을 찾지 못해 아래 위층을 헤매다 땀이 흥건한 채 잠을 깨곤 한다. 20년이 더 지난 이야기다. 힘들었지만 열정 하나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솔직히 지금이라면 그 때 만큼 열심히 할 자신은 없다. 


가장 해내기 힘들었던 과목은 한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회와 윤리야 전공이었고, 음악도 자신이 있었다. 지금도 노래방에서 박상철의 ‘황진이’를 부르면 노래 잘한다는 소리 안하는 사람이 없다. 공업은 당시 과목 이름이 ‘정보 사회’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 두 분 다 공업 선생님이셔서 그랬던지, 어떻든 자신이 있었다. 참고서 두 권 정도 읽고 가면 무난히 때울 수 있었다. 


그러나 한문은 달랐다. 시간이 없으니 모든 글자의 부수와 획수를 익히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학생 누군가가 그걸 물으면 답이 없었다. 자습서를 밑에 깔고 아이들에게는 눈속임을 하며 진땀을 흘린 기억이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교육 이야기 2018. 5. 1. 23:27

NGO포럼 인문학교실

NGO포럼 인문학교실 '유럽 도서관에서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학교 교육 위기의 원인과 그 해법으로 도서관 활용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육 이야기 2018. 5. 1. 23:17

스웨덴, 핀란드 교육에서 희망찾기


지난 19일, 황선준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과 부인 황레나 씨를 초청해 <스웨덴, 핀란드 교육에서 희망찾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다섯번째 생명토크에 참가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황선준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은 "스웨덴은 정답이 있는 사실 위주의 주입·암기식 교육이 아니라 문제설정과 문제해결 위주의 교육을 한다. 남들이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자신이 문제로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창의력이다."라며 한국교육의 획일성을 문제점으로 지적해 주셨습니다. 

또한 황선준 원장은 아이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으로 키우려면 수능과 같은 평가를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는데 이 부분은 한국 교육의 미래를 고민하는 분들과 심도있게 고민해봐야 하겠습니다.


 "실제로 아주 사소한 놀림 문제도 피해학생과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또 더욱더 깊이 개입해야 할 경우는 부모와도 상담을 한다"며 왕따문제 해결에 있어 학교와 부모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였습니다.

1박 2일 동안 진행된 이번 생명토크를 통해 많은 분들과 한국교육의 모순과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교육 문화 등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공간을 통해 우리 교육의 나아갈 방향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데 힘을 쏟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