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5. 5. 22:22

통학버스를 타고 산으로 가다 - 산길 이십리를 걸어다니는 아이들

2003년 4월에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에 합천 해인초등학교 학생들이 두 시간이나 걸어서 통학을 한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합천군은 내 선거구였다. ‘아이고 내가 왜 몰랐을까’ 자책을 하며 달려갔다. 해인초등학교는 가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전교생은 67명이다. 유치원생이 14명 있었다. 학교와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마장동에 사는 아이들이 15명 있었다. 학교에서 마장동까지 거리가 산길 4.5km였다.


나는 두 시간을 걸어 다닌다는 15명의 아이들과 함께 걸어서 등교를 했다가 공부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려 같이 하교를 해 보았다. 등교길은 내리막이라 1시간 반이 걸렸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어린이들이 걸어 다니기에는 힘든 거리였다. 길은 포장이 돼 있었지만 경사가 급했다.


나는 걱정이 됐는데 꼬맹이들은 힘들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장난을 치면서 쉬지도 않고 걸었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이었다. 5학년 혜란이는 몸이 좋지 않았는데, 이 아이의 가방을 남학생들이 번갈아 가며 들어 주고 있었다. 가방 들어 주는 데는 혜란이보다 어린 남학생도 예외가 아니었다. 참으로 착한 아이들이었다.


수업이 빨리 끝나는 저학년들은 자기들끼리 집으로 먼저 가지 않고, 학교 운동장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기다리고 있다가 고학년들과 함께 귀가를 했다. 


통학버스가 필요했다. 그런데 도교육청과 합천교육청에서는 원칙을 주장하며 난색을 표했다. 시골의 학교가 폐교가 되면 그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다니게 될 통합 학교에 통학버스가 한 대 배정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원칙이었다. 이러다 보니 어떤 학교는 통학버스가 5대가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한 대도 없는 학교도 많았다. 많은 학교가 관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가 하면, 통학버스가 없는 학교는 체험 학습 등 야외 학습에서 기동력이 떨어지고 차를 빌리려면 돈도 많이 들었다.


합천 해인초등학교는 통폐합된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통학버스가 없었다. 당시에는 이보다 더한 황당한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통학버스에 빈 자리가 있는데도 병설유치원 아이를 태울 수가 없었다. 보험 미가입으로 인한 책임 문제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자리가 있으면 인근의 중학생도 태우고 다닌다.


나는 도교육청과 합천교육청을 1년 동안 끈질기게 설득하여 결국 통학버스를 지원받았다. 선진국을 지향하는 의무교육 체제의 대한민국에서 초등학생에게 산길을 두 시간이나 걸어다니게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나의 집요한 설득이 통학버스를 만들어 냈다. 원칙의 문제 때문에 도교육청이 관리하는 통학버스가 아니라, 관광 회사의 25인승 소형 버스를 임대하는 형식으로 배치하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통학버스의 통합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학교만의 통학버스가 아니라 그 지역의 통학버스가 되면, 더 많은 학생을 태울 수 있고, 버스가 없어 현장체험이나 야외학습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사라지고, 학교는 버스 관리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니까 일석삼조라고 주장을 했다.


처음에 도교육청은 두 가지 이유로 반대했다. 기사들의 반발과 지역 버스회사의 반대를 들었다. 알아봤더니 버스회사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적자 노선은 전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전을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기사들의 반대는 설득을 통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 전 도교육청에서 밀양시와 남해군 등에서 시범 지역으로 정해 지역 단위의 통학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느슨한 통합 운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차근차근 설득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교육 현장이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합천해인초등학교에 통학버스가 생긴 날, 그 버스를 타고 아이들과 같이 하교를 했다. 학교에서 출발하여 마장동으로 올라가는 차안에서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환호성을 질러 댔다. 기쁜데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