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5. 6. 21:57

참고서 안에 들어 있던 돈 40만원

문성고 교사 시절, 1996년이었던 것 같다. 부교재 문제로 ‘업자’ 혼을 내준 적이 있다.  2006년에는 교과서와 부교재 채택 비리로 현직 교사들이 검찰에 줄줄이 붙들려 간 적이 있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교직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성직자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가 실천하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는 도덕성이라고 본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다른 집단에 앞서 있어야 존경받는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직업이기에 더 그렇다. 고리타분한 생각이라고 해도 나는 이 주장을 양보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10년 전에 우리는 부교재 채택료 거부 운동을 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특정 참고서를 선택하면 학생들이 그 책을 샀고, 출판사는 서점을 통해서 일정액의 사례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3학년 수업을 하다보면 참고서를 선택해서 수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그 점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학교 전산실에서 일을 할 때였다. 한 번은 수업을 하고 전산실로 돌아왔는데, 책상 위에 새 참고서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증정용이라는 표시가 있어서 서점에서 책을 두고 갔겠거니 했는데, 책을 펼쳐 보니 그게 아니었다. 십만원짜리 수표가 네 장이 들어 있었다.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다.

나는 우선 그 수표들을 사진으로 찍어놓고, 우체국에 가서 전신환으로 바꾸어서는, 사진과 전신환을 등기로 그 서점에 보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편지도 같이 보냈다. 이른바 부교재 채택료 거부운동을 자연스레 실천한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당시 전교조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부교재 채택료 거부운동이 벌어졌다. 그 운동이 먼저였는지, 내가 먼저 일을 벌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참 뒤에 내 서랍에서 그 때의 사진과 전신환 사본이 발견되었다. 혼자 멋쩍게 웃었다. 무슨 의거를 한 것인 양 사진까지 찍어둔 것이다. 

나는 물론 그 뒤로 한 번도 채택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렇게 소동을 벌이고서 돈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기도 했고. 그 뒤에 컴퓨터가 보편화되면서 나는 아예 참고서를 선택하지 않고 컴퓨터로 문제를 입력한 후 프린트를 해서 수업을 했다. 참고서 대여섯 권에서 좋은 문제만 골라 프린트를 했으니, 어떤 참고서보다도 내용이 좋았다. 

지금 같았으면 이 일도 출판사의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당할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내게 문제 제기를 하는 출판사는 없었다. 기출 문제나 참고서의 좋은 문제를 직접 입력하여 유인물을 만들어서 수업을 하면서부터는 아예 참고서 채택료 비리로부터 원천적으로 해방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