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5. 6. 21:58

고려대학교 입시 부정 의혹에 대한 집단 소송

이왕 안팎으로 부딪히고 싸운 일들을 얘기했으니, 이번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불리는 고려대 입시 집단소송에 대해서 알리고 싶다.

 

왜 아무도 안 나서지?
2008년 하반기 고려대 입시 결과 발표 뒤 진학지도교사협의회에서는 ‘정말 고교등급제를 적용하지 않았나?’는 의혹을 지적했다. 내신 위주로 뽑는 고려대 수시 2-2학기 일반전형 1단계에서 외국어고 학생들이 10명 가운데 6명꼴로 합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내신 6등급 학생까지도 합격하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다. 고려대는 수시 2-2학기 일반전형에서 교과영역(내신) 90%와 비교과 영역 10%를 반영하기로 해 내신등급이 높을수록 합격 가능성이 높았다. 고교등급제를 적용하지 않았다면 대체 이 결과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고려대 수시전형 결과에 대한 의혹이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학부모, 교사, 학생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실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없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차츰 조용해지는 것이 아닌가.      
     
사단법인 경남교육포럼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입상담지원센터에서 학생들의 진학상담을 하는 선생님들과 나는 2008년 고려대 수시전형이 명백하게 문제가 있다고 확신했지만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말고도 이 문제를 제기할 학부모나 교사, 학생들이 아주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의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나는 이 문제가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결국 대입상담센터 선생님들과 내가 나서기로 했다. 마침 창원을 지역구로 하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의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님의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진보신당 송경원 연구원의 탁월한 분석력도 큰 힘이 되었다.

나는 고려대 수시전형에 불합격한 경남 지역의 학생들을 상대로 소송인단을 모으면서 전국교육자치발전협의회의 교육위원들에게도 동참을 제안했다. 16개 시·도 교육위원들이 각 지역별로 고려대 입시 논란과 관련해 소송참가인단을 모으기로 했다.

 

지방의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만 불리하다.  
소송을 준비하며 일선 고등학교 진학지도 교사들과 다섯 차례 이상 심도 있는 협의를 하고, 전국진학지도교사협의회(진협)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교사들과도 두 차례 간담회를 가졌다. 그 결과 고려대 입시 문제는 지방에서 나설 명분이 더 큰 사안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고려대는 전형 과정을 비공개로 복잡하게 만들어 등급제를 은폐하고, 내신등급을 무력화시키고 말았는데, 내신 반영률이 낮아지고, 비교과 영역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정보에서 소외되는 지방의 일반계 고등학교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려대는 입시 요강에서 밝힌 교과 영역 90%, 비교과 영역 10%라는 반영 비율을 아예 거꾸로 적용했다고 볼 수 있었다. 예컨대 교과 영역은 총점만 90점으로 하고 기본 점수를 높게 주는 한편, 비교과 영역은 10점 만점에 기본 점수를 주지 않는 편법을 사용하였다. 실질적으로 비교과영역이 당락을 결정하게 한 것이다. 이는 국민과 수험생에 대한 기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이번에 고려대는 특정 외국어능력 시험에 가산점을 주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외국어고 학생들이야 외국어능력 시험이 일상적인 것이라지만, 우리 지방의 일반계 고교 학생들은 그 시험을 거의 치지 않는다. 이 또한 지방의 일반계 고등학교에 불리한 것이다. 

 

 더 억울한 학생들도 있다
마침내 2009년 3월 17일 전국교육자치발전협의회가 18명의 학부모들을 대리해 고려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창원지방법원에 냈다. 이때까지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힌 학부모는 모두 73명이었지만 우선 18명이 실제 소송에 참가했다. 

소송에 대한 뉴스를 듣고 다음날 6명이 참가 의사를 밝혀서 2차로 소송을 낼 준비를 하게 돼 4월 2일 7명이 추가로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민태식 변호사가 맡았다. 

불합격처분취소 청구소송도 고려했지만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진행하게 된 이유는 이미 학기가 시작돼 불합격 처분 취소 소송은 승소를 해도 실익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1인당 1,000만원~3,000만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창원지방법원에서 11월 11일 결심이 있을 예정이고, 12월쯤에는 선고가 날 것 같다. 최선을 다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는 고려대의 잘못을 알리기 위해, 또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는 이런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소송을 준비하면서 이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지방의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공부 잘하는 학생, 그러니까 명문이라는 고려대에 지원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당한 부당함도 풀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 정책의 모순 때문에 눈에 띄는 않는 차별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문제도 외면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소송조차 할 수 없지만 어떻게 보면 더 억울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부모의 지갑 두께가 학생들의 성적에 영향에 미치는 문제, 지역과 학교 간의 차이가 학생들의 대학 진학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 나아가 대학을 가지 않는 학생들은 실제 제대로 된 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는 문제 등. 이런 문제들은 워낙 근본적인 문제라 늘 언급은 되지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는 교육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이런 문제들이 지방의 한 교육위원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라고들 하지만 나는 물러서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한 언제나 좌고우면하지 않았듯이 이런 문제 또한 외면하고 싶지 않다.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싶다.